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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낯선 도시의 차가움 속, 두 창작자가 찾아낸 다정한 온도

    Updated:2026-09-07

    ‘Taming the Tale’ 차예령 × 케일럽 데로우 인터뷰

    캘리포니아의 교정에서 함께 그림을 그리며 “언젠가 같이 전시하자”던 스쳐 지나갈 법한 약속. 각자의 위치에서 묵묵히 영역을 구축해가던 두 20대 창작자가 서울의 한 모퉁이에서 다시 접점을 찾았습니다. 방학을 맞아 태평양을 건너온 케일럽 데로우(Caleb Deroe)와, 그의 돌발 제안을 받아들여 두 달 반 만에 전시 기획부터 디자인까지 유려하게 완성해낸 차예령 작가가 그 주인공입니다.

    트렌디하면서도 능청스럽고 귀여운 구석이 있는 케일럽이 차가운 서울 빌딩 숲에서 발견한 건 고향 코스타리카를 떠올리게 하는 정겨운 ‘정(情)’의 감각이었고, 당당하면서도 특유의 상냥함으로 현장을 이끈 차예령은 회화라는 틀을 넘어 대중과 호흡하는 매력적인 그래픽 팝업을 완성해냈습니다. 늦은 여름, 유연하고 에너지 넘치는 두 작가를 만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사진 ⓒ 문화다이브

    PART 1. “정말 한국에 올 줄은 몰랐죠”

    Q. 캘리포니아 대학 시절 시작된 인연이 서울에서의 2인전으로 이어졌어요.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A. 차예령

    케일럽과는 대학교 회화과 선후배 사이예요. 재학 시절에도 둘이서 학교 갤러리 전시를 같이 하기도 했고, 케일럽이 퍼포먼스나 영상 작업을 할 때 제가 촬영이랑 녹음을 직접 따주면서 꽤 깊게 교유했거든요. 평소에도 “언젠가 꼭 같이 작업하자” 이야기만 주고받았는데, 제가 한국에 머물던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온 거예요. “나 지금 한국 가려고 하는데 어디 살아?” 하고요. (웃음) 생각보다 너무 진심이라 ‘아, 진짜 오는구나’ 싶었죠. 서울에 도착한 케일럽과 곧바로 머리를 맞대고 급하게 기획을 시작했습니다.

    A. 케일럽

    저에게는 이번이 첫 한국 방문이자, 아시아 대륙 자체를 처음 밟아본 순간이었어요. 모든 게 낯설 수도 있었지만, 예령이라는 확실하고 감각적인 친구가 한국에 있었으니까요.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었죠. 오랫동안 대화로만 나누던 아이디어가 현실의 공간에 펼쳐지는 과정 자체가 저에겐 참 설레고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PART 2. 작가이자 기획자, 그리고 디자이너라는 레이어

    Q. 준비 기간이 불과 두 달 반 남짓이었다고요. 예령 작가님이 한국 현지에서의 기획 전반을 총괄하셨다고 들었어요.

    A. 차예령

    케일럽은 한국이 처음이라 전시 문화나 마케팅, 디자인 트렌드를 전혀 알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장소 대관부터 예산 설정, 홍보, 포스터 디자인, 제작 일정 관리까지 전반적인 구조를 잡았어요. 사흘 단위로 타이트하게 일정을 끊어가며 추진했죠. 제가 구조나 방향성을 제안하면 케일럽이 유연하게 호응해주고 조율해줘서 합이 정말 잘 맞았습니다.

    사진 ⓒ 문화다이브

    Q. 기존의 순수 회화 작업과는 또 다른 결의 작업물들이 인상적입니다.

    A. 차예령

    맞아요. 이전에는 조금 더 프라이빗하고 격식 있는 공간에서 페인팅 중심의 회화 전시를 해왔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전시가 열리는 지역 특성과 관람객의 성향을 고려해 포스터, 매거진, 스티커처럼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그래픽 레이어로 영역을 확장해봤습니다. 작가로서 제가 가진 매체의 확장성을 스스로 시험해본 유의미하고 즐거운 실험이었어요.

    사진 ⓒ 문화다이브

    PART 3. 차가운 빌딩 숲에서 발견한 다정한 온기

    Q. 케일럽 작가의 작업에는 도심의 구조나 콘크리트, 건축물의 표면이 자주 등장해요. 낯선 서울이라는 도시는 어떤 인상으로 다가왔나요?

    A. 케일럽

    부모님이 두 분 다 건축물과 벽을 주로 찍으시는 사진가이셔서 어릴 때부터 도시 구조물에 자연스럽게 매료되었어요. 서울에 처음 왔을 때도 고층 빌딩과 아파트 단지가 만들어내는 차갑고 현대적인 풍경이 먼저 눈에 들어왔죠. 그런데 그 속을 유심히 들여다보니 신기할 정도로 친숙한 온기가 느껴졌어요.

    사진 ⓒ 문화다이브

    제가 코스타리카 출신이라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밀접하고 정겨운 커뮤니티 문화를 익숙하게 느끼며 자랐거든요. 그런데 서울의 골목길과 아파트 단지 사이에서 딱 그 결을 발견한 거예요. 바로 한국의 ‘정(情)’이라는 감각이었죠. 영어나 스페인어로 명확히 대체할 수 있는 단어는 없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사람 사이에 맴도는 다정한 온기가 있잖아요. 차가운 도심 속에서도 그 정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게 인상적이어서, 이번 작업에도 동네 어르신들이나 골목 풍경 같은 친근한 요소들을 직관적으로 대비시켜 담았습니다.

    사진 ⓒ 문화다이브

    PART 4. 코스타리카의 문양과 한국의 기와가 만났을 때

    Q. 전시 기간 동안 직접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가 홍보를 하기도 하셨다고요. 현장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A. 케일럽

    관람객분들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순간이 저에게는 가장 소중했어요. 제 작업 중에 코스타리카의 전통문화를 담은 문양이 들어간 작품이 있는데, 전시장을 찾은 한국 관람객분들이 그걸 보시고 “한국의 전통 기와 문양과 정말 닮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태평양 너머 멀리 떨어진 두 문화권이 시각적인 디자인 요소에서 예기치 않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소름이 돋을 만큼 신선하고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진 ⓒ 문화다이브

    A. 차예령

    케일럽이 하도 싹싹하고 친근하게 거리에 나가 홍보를 도와줘서 관람객분들도 한층 편안한 마음으로 들어오셨던 것 같아요. 작품을 단순히 벽에 걸어두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획부터 마케팅, 관람객과의 대화까지 작가가 직접 발로 뛰며 완성한 전시라 더 깊은 잔상이 남습니다.

    PART 5. 경계를 허물며, 다음 장으로

    Q. 이번 프로젝트를 마친 두 분의 소회와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합니다.

    A. 차예령

    처음 시도해본 팝업 형태의 복합 전시라 배운 점도, 스스로 복기할 점도 많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매우 만족스러운 이정표가 되었어요. 멀리서 저 하나를 믿고 흔쾌히 와준 케일럽에게 참 고맙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동화 삽화, 만화 원화, 캐릭터 디자인, 그래픽 디자인 등 영역을 가리지 않고 창작의 스펙트럼을 단단하게 넓혀갈 생각입니다.

    A. 케일럽

    저에게 전시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는 ‘사람 사이의 연대와 교류’예요. 이번 전시를 통해 그 가치를 충분히 체감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앞으로 캘리포니아와 코스타리카에 위치한 미술관, 박물관들과의 전시를 차근차근 준비하면서 본업인 회화 작업도 꾸준히 이어갈 예정이에요. 부업인 DJ 활동도 넓혀서 록 페스티벌 같은 음악적 무대에서도 인사드리고 싶고요. 한국에서의 경험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조만간 꼭 다시 찾고 싶습니다. 그때는 관람객이 훨씬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호흡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한 전시를 선보이고 싶네요.

    각자의 색깔이 명확한 20대 두 아티스트가 만났을 때 전시장은 하나의 생생한 놀이터가 됩니다. 차가운 도심 속에서 정겨운 체온을 찾아내는 케일럽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경계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재다능하게 판을 짜나가는 차예령의 시원시원한 감각. 서울을 무대로 펼쳐진 이들의 에너제틱한 이야기는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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