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레트로 열풍을 넘어, 40년 전 도쿄의 빛과 그늘에 지금의 한국이 응답하는 이유
한국 시장에서 시티팝(City Pop)이 일시적인 숏폼 밈이나 뉴트로 트렌드로 떠오른 지도 어느덧 수년이 흘렀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이 유행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2030 MZ세대의 일상적 취향으로 깊숙이 뿌리내렸다는 사실이다. 1980년대 일본 버블 경제기의 음악과 아날로그 콘텐츠들이 2020년대 한국에서 끊임없이 소비되는 이 현상은, 단순히 ‘듣기 좋은 옛날 음악’을 재발굴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과거 80~90년대 한국 가요사가 일본 시티팝의 펑키한 세련됨과 멜로디 구조에서 직간접적인 영감을 받았듯, 오늘날 우리가 이 음악에 다시 열광하는 바탕에는 40년 전 일본의 사회·문화적 자상과 현재 한국 사회가 공유하는 묘한 평행이론이 자리 잡고 있다.

사진출처 = Tatsuro Yamashita-for you
풍요의 정점에서 느껴지는 ‘선진국형 결핍’과 도피 심리
1980년대 도쿄는 세계 자본의 중심이자 무한한 성장이 지속될 것만 같았던 유토피아였다. 현재의 한국 역시 물질적·문화적으로 고도의 성숙기에 도달한 선진국 사회다. 그러나 고도성장의 과실 뒤에 따라오는 것은 개인화, 치열한 경쟁, 그리고 앞으로 더 좋아질 수 있을까에 대한 아득한 불안감이다.
80년대 일본의 시티팝은 거창한 사회적 메시지나 뜨거운 열정을 노래하지 않는다. 대신 세련된 도시의 밤, 해변으로의 드라이브, 홀로 마시는 위스키 같은 개인적인 소일거리와 감각적인 도피를 포착한다. 성장이 둔화된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의 한국 청년들에게, 묵직한 시대적 담론보다 지친 하루 끝에 나만의 감성적 영역으로 도피하게 해주는 음악이 훨씬 더 깊은 위로로 다가오는 것이다.
세련된 화려함 뒤에 감춰진 ‘서늘한 허무함’
시티팝을 단순히 신나는 디스코나 청량한 리조트 음악으로만 정의할 수 없는 이유는, 멜로디 구석구석에 짙게 베인 특유의 멜랑콜리 때문이다. 타케우치 마리야의 나 마츠바라 미키의 를 들어보면, 경쾌한 펑키 리듬 위로 묘하게 씁쓸하고 외로운 정조가 흐른다.
겉으로는 마냥 풍요롭고 화려해 보이지만 속은 공허한 상태, 사람들로 붐비는 대도시 한가운데서 느껴지는 개인의 소외감. 이 감정선은 40년 전 도쿄인들이 느꼈던 감정이자, 오늘날 서울을 살아가는 2030세대가 매일 직면하는 내면의 풍경과 정확히 닿아있다. 화려함과 쓸쓸함이 공존하는 이 이중적인 감성이 한국 청년들의 정서적 주파수와 정확히 일치하는 셈이다.
겪어보지 않은 시대에 대한 향수: 데자뷔의 매력
MZ세대에게 80년대 일본은 본인이 직접 경험해 본 적 없는 미지의 시공간이다. 그러나 디지털 매체를 통해 접하는 당시의 세련된 아날로그 연주, 굵은 애니메이션 프레임, 노을빛 일러스트는 이들에게 겪어보지 않았음에도 그리운 가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치열한 효율성만을 강요하는 고해상도 디지털 사회에서, 손으로 직접 연주한 아날로그 악기 소리와 카세트테이프 특유의 먹먹한 질감은 역설적으로 가장 신선하고 감각적인 문화적 자극이 된다.
결국 시티팝이 한국에서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히 일본 문화를 표피적으로 소비하기 때문이 아니다. 자본과 도시화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피어나는 특유의 세련된 도시적 감성, 그리고 그 뒤에 찾아오는 서늘한 고독을 40년의 시차를 두고 두 사회가 함께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밤 우리가 틀어놓은 시티팝의 아날로그 바늘은, 삭막한 도심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감각적이고 완벽한 정서적 안식처를 제공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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