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주류를 이루는 시대, 역설적으로 아날로그적 감성에 대한 갈증이 깊어지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일상 속에서 사람들은 느림의 미학, 손끝으로 전해지는 온기에 주목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묵통캘리그라피연구소’라는 이름이 유독 눈에 띈다. 글씨 쓰기라는 일상적 행위를 문화예술의 새로운 지평으로 확장시키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묵통, 그 이름에 담긴 철학
“묵통이라는 의미는 ‘묵(먹)과의 소통’을 의미합니다.” 연구소 관계자의 설명은 단순하지만 깊은 울림을 준다. “먹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사용자의 감성과 의도를 반영하는 매개체입니다. 붓의 움직임과 먹의 번짐, 농담 조절에 따라 글자에 감성이 깃들고 힘과 유연성이 동시에 표현됩니다. 이 과정은 캘리그라피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이러한 먹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묵통캘리그라피연구소가 설립되었다. 연구소장 김보영을 중심으로 전시기획 담당 최인숙, 교육개발 담당 김은영, 자격증 과정 담당 김지영이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연구소를 이끌어가고 있다. 이들의 만남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먹을 통한 예술적 표현에 대한 공통된 가치관에서 비롯되었다.

묵통은 “먹과 동양화 물감을 이용한 기존의 감성적인 전통 캘리그라피부터 미술과 공예의 다양한 기법과 오브제를 활용한 미술 융합형 캘리그라피까지 더 넓은 영역의 캘리그라피를 추구하는 연구소”로 자신들을 정의한다. 개인의 글꼴 개발 교육과 전문강사 양성을 통해 캘리그라피의 대중화와 전문화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으며, 매년 전시를 통한 창작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공동체가 지켜온 가치와 방향성
오랜 시간 함께 활동해온 묵통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묻자, 이들은 명확한 답을 제시했다. “묵통이 추구하는 방향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선생님들과 함께해 왔기 때문에 오랜 시간 한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활동 방식은 주목할 만하다. 운영진들은 캘리그라피의 기본기를 충실히 하면서도 미술, 공예, 디자인 등 새로운 분야를 배우고 연구하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매년 새로운 재료를 선정하여 전시를 기획하고, 해당 재료에 관심 있는 작가들을 모집하여 전시하는 방식을 통해 지속적인 실험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한글 캘리그라피에 대한 예술적 비전
묵통이 바라보는 한글 캘리그라피는 글씨 쓰기의 범주를 뛰어넘는다. “한글의 독창적인 조형미를 통해 개개인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창작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씨 쓴 이의 호흡과 결이 보는 이로 하여금 감성을 깨우게 하는 것이 묵통이 바라보는 한글 캘리그라피입니다.”

이러한 철학적 토대 위에서 탄생한 것이 ‘묵통 이야기 캘리그라피’라는 책이다. “캘리그라피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에게 캘리그라피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이해시키고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는 의도를 담아 제작한 책입니다. 따라쓰기에 그치지 않고 문구를 어떻게 구성하고 구도를 만들 수 있는지, 어떻게 감정을 다양한 선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들은 캘리그라피의 예술적 확장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운영진들은 전시를 통해 캘리그라피를 접목한 다양한 영역을 소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술과 공예를 가리지 않고 새로운 재료를 연구하여 참여작가들과 함께 확장된 재료들이 캘리그라피와 얼마나 잘 어우러지는지 보여주고자 합니다.”



예술인의 현실적 고민과 문화예술 생태계에 대한 성찰
하지만 묵통의 미래 계획을 묻는 질문에서 한국 문화예술계의 구조적 문제가 드러났다. “지금처럼 묵통은 꾸준히 글씨를 쓰며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묵통이 규모를 키워가지 못하는 이유는 예술 활동을 위해서는 경제활동을 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고민은 개인적 차원에서 예술 생태계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확장된다. “경제적 제약을 받지 않고 활동할 수 있도록 많은 기회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우리처럼 활동하고 있는 예술인들이 주변 환경에 휘둘리며 버텨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치지 않고 예술에만 전념하여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이들은 “문화예술 지원의 기회가 더 많은 예술인들에게 균등하게 주어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이는 개인적 바람이라기보다 한국 문화예술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제언으로 읽힌다.
묵통캘리그라피연구소의 이야기는 전통 예술의 현대적 계승과 발전, 그리고 예술인들의 현실적 고민까지 아우르는 의미 있는 화두를 던진다. 먹과의 소통을 통해 한글의 아름다움을 전하고자 하는 이들의 진정성 있는 노력이 한국 문화예술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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